[박준용의 인사노무이야기] ‘이해 못하는 계약서’…외국인 노동자 보호는 어디에?

한글 계약서, 외국인 노동자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설명 없이 서명만…이게 진짜 계약일까?

다국어 계약서 있다지만, 현장에선 쓰이지 않는다

읽지 못한 계약서에 서명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경기도 안산의 한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 응우옌 티린(가명) 씨는 입국 직후 받은 근로계약서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했다. 계약서는 전부 한국어로 되어 있었고, 통역은커녕 간단한 설명조차 없었다. 계약서에 어떤 권리와 의무가 포함됐는지조차 알지 못한 상태로 그는 1년 이상을 일해 왔다.

 

이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내용도 모르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계약’이라는 형식은 갖췄지만, 실질적인 이해와 동의는 빠진 채 절차만 진행되는 구조다. 이 같은 현실은 법적 보호의 시작점에서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사진 출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모습, 챗gpt 생성]

한글 계약서, 외국인 노동자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자국어로 된 근로계약서를 제공받지 못한다. 특히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등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의 계약서는 오직 한국어로만 작성된다. 노동자의 이해 여부는 묻지 않고, 형식적인 서명만 받는 관행이 여전히 존재한다.

 

법적으로는 다국어 계약서 제공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의무조항이 아니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표준근로계약서도 한국어 중심이고, 사업주들은 "시간이 없다", "어차피 내용은 다 똑같다"며 번역을 생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설명 없이 서명만…이게 진짜 계약일까?

노동계약은 단순히 서명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의 이해와 동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계약 당시 자신이 어떤 조건으로 일하게 되는지도 모른 채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서울의 한 인권센터 관계자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휴게시간, 연장근로, 퇴직금 등 중요한 내용을 전혀 모르고 일하다가 분쟁에 휘말린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정보 부족이 아닌, 제도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일하고 있다.

 


다국어 계약서 있다지만, 현장에선 쓰이지 않는다

고용노동부는 다국어 근로계약서 예시를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지만,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업장이 많다. 또한 표준계약서를 출력해 사용하는 것조차 번거롭다는 이유로 현장에서는 대부분 무시되고 있다.

 

한편 외국인노동자 고용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이 느슨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근로계약서 확인은 고용허가제 초기 단계에서만 이루어지고, 이후에는 형식적인 점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다국어 계약서 제공이 법제화되었음에도 현실에선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도 ‘알고 계약할 권리’가 있다

근로계약은 쌍방 간의 명확한 이해와 동의를 바탕으로 성립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라 해서 그 원칙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외국인 노동자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며, 정당한 권리와 보호를 받아야 할 ‘노동자’다.

 

다국어 계약서의 실효성 있는 제공, 계약 전 통역과 설명 의무화, 사업주 교육 강화와 행정감독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고용노동부와 지자체는 단순한 서류 점검을 넘어, 현장 중심의 적극적인 개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알고 계약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노동 인권 보호의 출발점이다.

 

 

 

 

 

 

 

작성 2025.07.12 09:17 수정 2025.07.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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