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漢儒學] 묵자의 ‘나무 연’과 이 시대의 미련한 도전자들을 위하여

한비자(韓非子) 〈외저설 좌상(外儲說左上)〉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나온다. 묵자(墨子)가 3년 동안 공을 들여 나무로 연(木鳶)을 만들었는데, 겨우 하루 날아가고 부서져 버렸다는 이야기다. 제자가 "선생님의 기술이 대단하여 나무 연을 날리게 하셨습니다"라고 칭송하자, 묵자는 오히려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수레의 끌채마구리(車藗)를 만드는 사람보다 손재주가 못하다. 그들은 짧은 나무로 반나절도 안 걸려 마구리를 만들지만, 그것은 서른 섬의 무게를 견디며 먼 길을 가고 몇 년이 지나도 망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만든 연은 3년이나 걸렸음에도 하루 만에 망가지지 않았느냐."

 

이 이야기를 들은 명가(名家)의 논객 혜자(惠子)는 "묵자야말로 진정한 고수다. 실용적인 것을 훌륭하다 하고, 쓸모없는 것을 서툴다고 하니 말이다"라며 한술 더 떠 칭찬한다.

 

한비자와 혜자의 눈에는 당장 백성들의 삶에 유용하고 튼튼한 수레 마구리가 최고의 기술이었고, 3년을 투자해 고작 하루 날고 부서진 나무 연은 비효율의 극치이자 쓸모없는 장난감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묵자는 그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성품이었을 뿐, 그가 삼 년간 온갖 지혜를 짜내어 만든 나무 연은 시대를 수천 년 앞서간 첨단 과학기술의 원형이었다. 그것은 훗날 인류를 하늘로 이끈 비행기와 로켓의 거대한 시초였다. 단지 그 시대에 당장 짐을 나르는 데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그 위대한 도전의 가치를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실 세상의 진보는 대개 이런 ‘쓸모없어 보이는 실패’에서 시작되었다.

 

고개를 돌려 지금 우리 시대를 본다. 우리 사회 역시 한비자와 혜자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직 '당장 돈이 되는가', '효율적인가', '눈앞의 성과가 나오는가'만을 따지는 세상이다.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묻는다. “그래서 그게 돈이 되나요?”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두고도, 세상은 온통 '누가 내 아파트값을 지켜줄 것인가' 하는 노골적인 욕망을 계산하느라 바쁘다. "내가 어디에 살든 나의 정치적 지역구는 강남"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정당의 정책이나 가치보다 오직 세금 혜택과 부동산 손익계산서에만 유권자의 눈과 귀가 쏠린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쫓는 '수레 마구리'식 투기판에 온 나라가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쓰여야 할 귀한 자금과 열정은 아무런 가치도 만들지 못하는 콘크리트 덩어리 밑에 가라앉고 있다.

 

그러나 어떤 가치는 결코 통장 잔고로 계산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도 당장 돈은 되지 않지만, 어떤 소중한 가치를 위해 묵묵히 땀 흘리며 각자의 ‘나무 연’을 깎고 있는 미련한 도전자들이 도처에 있다.

 

누군가는 생태를 연구하며 평생 산과 들을 돌아다닌다. 당장 돈은 안 된다. 그러나 그 덕분에 우리는 잃어버린 숲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누군가는 작은 마을 도서관을 지키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 수익은커녕 적자를 걱정해야 하지만, 그 아이 중 누군가는 책 한 권 덕분에 삶이 바뀐다.

 

누군가는 독립영화를 만들고,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지역의 역사를 기록한다. 조회 수가 적고 돈이 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한 시대의 기억을 붙드는 일이 된다. 또 누군가는 시민단체에서, 환경운동 현장에서, 탄소중립이나 공동체를 이야기하며 ‘현실감 없다’는 핀잔을 듣는다. 그러나 먼 훗날 우리는 그들의 수고 덕분에 조금 덜 망가진 세상을 물려받을지도 모른다.

 

비단 거창한 사회적 가치만이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 끊어진 꿈을 다시 붙드는 사람,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끝내 원칙을 지키는 사람도 어쩌면 각자의 가슴속에 ‘나무 연’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꽃이 피는 데 시간이 걸리듯, 인간의 진보도 종종 비효율과 실패의 옷을 입고 온다. 수레 마구리를 만드는 기술은 우리를 오늘을 살아가게 하지만, 나무 연을 만드는 무모한 상상력은 인류의 내일을 열어젖힌다.

 

묵자의 나무 연은 비록 하루 날고 망가졌지만, 어쩌면 그 하루가 인류의 상상력을 천 년 앞으로 밀어 올린 위대한 하루였는지도 모른다.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눈앞의 효율성을 뛰어넘는 위대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마땅히 평가받고 인정받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세상의 야박한 잣대에 기죽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하늘을 준비하는 이 시대의 모든 도전자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작성 2026.06.06 08:42 수정 2026.06.06 08:42

RSS피드 기사제공처 : 씨초포스트 SSICHO Post / 등록기자: 김동택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좋은사람 #행복나눔 #사랑나눔..
AI 매칭엔진 도입 2026 충청권 ICT 취업박람회 개최
국회 조형물 거장 정보원 작가, 50년 베일 벗는다...성북서 역대급 전..
반도체 끝났다고? 모건스탠리가 폭로한 하반기 주식 대이동 시그널
'제2회 전국 우리소리 경창대회' 종로에서 화려한 개막
자연의 모든 것이 대립과 조화로 움직인다고 보았기때문. 짝수는 균형과 안..
보양식을 먹어야 하는 날~。#jejuolletrail #ssicho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9]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0)
경기도 토지거래허가구역 실거주·경작 사후조사 착수 | 부동산 투기 철퇴 ..
단 하나의 빛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선한영향력 #CCBS #칭찬위원연합회..
당 고종이 신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군사정보를 신라 문무왕에게 급히 알리..
허동보의 일히일비(19) - 가려 먹는다고 큰 일이 나진 않아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9)
사랑이 세상을 하나로 만드는 순간 #사랑나눔축제 #칭찬위원연합회 #사랑으..
매듭은 지었지만, 자리는 지킵니다 | 계약해제 수용하라, 현대건설 결단하..
결단이 곧 계약해제 수용입니다 | 현대건설 결단하라, 계약해제 수용하라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 。#ssicho
광교신도시 A17블록 지분적립형 아파트 청년·신생아 특별공급 전격 신설
칭찬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꿉니다 #칭찬합시다 #사랑나눔축제 #칭..
카보베르데의 꿈! 인구60만, 작은섬나라!
창덕궁 후뭔에 있는 관람정, 존덕정이나 승재정 방향에서 보면 두 발로 물..
반야탕(般若湯)。낙조가 아름다운 도비산에서 바라보는 천수만, 오랫만에 올..
2026 용인 생활관광 미션투어 스탬프 투어: 여행하고 온누리상품권·투어..
좋은 사람 한 명이 세상을 바꿉니다 #사랑나눔축제 #선한영향력 #칭찬위원..
현대차그룹, 영남에 42조 폭탄 투하 AI 모빌리티 우주 에너지 선점 나..
삼성, 60조 폭탄투자로 영남을 '피지컬 AI 거점' 삼아 20만 일자리..
한화, 우주·AI에 55조 격전적 투자…대한민국 천상 영토 개척 신호탄
유튜브 NEWS 더보기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초청토론회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9] - 이스라엘 3대 절기와 그 의미

두려움을 신뢰로 바꾸는 관계의 언어학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0)

상리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보장특구사업 상리마을 주민리더 도쿄탐방기

봄 (Feat.황정호)

흩어진 말들을 모아 하나의 질서로 세우는 법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9)

[50 Movements] #9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 | 리처드 용재 오닐 & 디토 오케스트라 | Shos...

병원 광고비, 어디서 새고 있습니까? 팀퍼포먼스 정용훈 대표가 말하는 AI 병원 마케팅

믿음의 선배들(8) - 타협을 모르는 순교자, 로마의 히폴리투스

개인vs법인사업자 장단점과 법인전환 절세방법(feat. 가족법인과 영업권으로 절세하기)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8] - 사라진 열 지파, 흔적 찾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8) 욕망의 수렁에서 건져 올린 영혼의 정교한 매뉴얼

#쏠롱구스노래들024 #SOS024 #광야 #Wilderness #정원진 #solongus #CCM #car...

HAUSER - Oblivion (Piazzolla)

칭찬사랑나눔 칭찬합시다축제시작된다. #칭찬문화

은혜와 감동이 물결치는 찬양 - 삼일노회 수련회

믿음의 선배들(7) - 열정의 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7] - 피 터지는 성전논쟁, 그 시작은?

캔바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l Canva 팝업 행사 디자인 과정 공개

내면의 깊은 성찰과 거룩한 감사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