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칼럼] 디지털 문맹의 그림자, 은퇴 공무원도 스마트폰 앞에서 멈춰 선다

퇴직 후 마주한 또 다른 시험, 디지털 사회

스마트폰은 손에 있지만 서비스는 손에 닿지 않는다

배움의 기회를 넓힐 때 진짜 디지털 포용이 시작된다

 

 

퇴직 후 마주한 또 다른 시험, 디지털 사회

 

“평생 공문서를 작성하고 행정을 처리했던 사람도 스마트폰 하나 앞에서는 길을 잃는다.”

얼핏 들으면 과장처럼 들릴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공직 사회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정책과 제도를 다뤘던 은퇴 공무원이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주민센터에서 민원을 처리하던 경험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전자문서를 제출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전환이 일상이 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은행 창구는 줄어들고 모바일 뱅킹은 늘어났다. 병원 예약도 스마트폰으로 진행되고, 정부 서비스 역시 온라인 인증을 전제로 제공된다. 교통, 쇼핑, 금융, 행정, 문화생활까지 대부분의 서비스가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작동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다. 젊은 세대에게는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은퇴 세대에게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정년퇴직 이후 사회 변화의 속도를 체감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디지털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과거에는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문맹이 사회적 문제였다면, 오늘날에는 스마트폰과 디지털 서비스를 활용하지 못하는 디지털 문맹이 새로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게 드리워져 있다.

 

 

스마트폰은 손에 있지만 서비스는 손에 닿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스마트폰 보급률은 매우 높다. 대부분의 고령층도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소유와 활용은 다른 문제다.

많은 은퇴 공무원들은 전화와 문자 정도는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러나 모바일 금융, 간편 인증, 전자정부 서비스, 온라인 예약 시스템, QR코드 활용, 인공지능 서비스 이용 단계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작은 화면 속 수많은 메뉴와 복잡한 인증 절차는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많은 고령층은 비밀번호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 인증 앱 설치 과정에서 포기하기도 하고, 금융사기 위험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디지털 기술이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불안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은퇴 공무원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교육 수준과 풍부한 업무 경험을 가진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환경에서는 초보자로 돌아가는 경험을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나이에 뭘 배우냐”는 말 뒤에는 사실 “배우고 싶지만 따라가기 어렵다”는 현실이 숨어 있다.

 

 

디지털 격차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디지털 문맹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위험하다. 오늘날 디지털 역량은 사회 참여의 기본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 민원 신청, 건강보험 조회, 연금 확인, 세금 납부, 병원 예약, 교통 서비스 이용까지 디지털 활용 능력이 없으면 기본적인 사회생활조차 어려워진다. 디지털 격차는 곧 정보 격차로 이어지고, 정보 격차는 경제적·사회적 격차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소외가 고립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가족과의 소통도 메신저를 통해 이뤄지고, 지역 커뮤니티 정보 역시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공유된다.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연결망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가 차원에서도 이는 중요한 과제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모든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세대만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다른 세대는 배제된다면 디지털 전환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다양한 기관들이 디지털 배움터와 정보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급자 중심 교육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한 스마트폰 기능 설명보다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금융, 의료, 행정 서비스 활용 중심의 교육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언어와 문법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표준화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듯이, 디지털 환경 역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또한 디지털 정보의 정확한 전달과 활용을 위해서는 이해하기 쉬운 표현과 체계적인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배움의 기회를 넓힐 때 진짜 디지털 포용이 시작된다

 

디지털 문맹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결국 교육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시험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삶을 위한 교육이다.

은퇴 공무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신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일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병원 예약을 직접 해보고, 모바일 뱅킹을 활용해 보고, 정부24 서비스를 이용해 보는 실습형 교육이 중요하다.

지역 복지관과 주민센터, 평생교육기관은 단순한 강의 공간이 아니라 디지털 적응을 돕는 생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특히 같은 세대가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동년배 학습 프로그램은 심리적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기업 역시 고령 친화적 서비스 설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글씨를 크게 하고, 인증 절차를 단순화하며, 사용자 경험을 직관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은 단순한 배려를 넘어 미래 고객 확보 전략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디지털 활용 능력은 나이와 무관하게 학습할 수 있는 역량이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은퇴 공무원이 스마트폰 사용을 배우는 모습은 뒤처진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려는 도전의 모습이다.

 

 

 

스마트폰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연결되는 것이다

 

디지털 문맹의 문제는 단순히 스마트폰 사용법을 모르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정보에 접근하는 능력, 사회와 연결되는 능력,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는 능력과 직결된다.

은퇴 공무원들이 스마트폰 앞에서 멈춰 서는 순간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급격한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포용적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장면이다.

기술은 발전할수록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해야 한다. 만약 기술이 일부 사람만을 위한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혁신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묻고 있다. 디지털 사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사회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 모든 세대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기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서비스, 그리고 늦게 배우더라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교육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배우는 것은 기계를 익히는 일이 아니다.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연결은 개인의 삶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작성 2026.06.09 05:55 수정 2026.06.09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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