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바꾸고자 한 것은 정권이 아니라 정치문화였다. 정치권에는 종종 특정 인물의 출마지나 공천 과정과 관련하여 여러 이야기가 떠돈다. 최근에도 일부 정치인들의 출마 과정을 두고 "누가 누구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어느 지역 공천을 요구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정치권 안팎에서 회자되었다.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많은 국민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다. 광역단체장이나 국회의원 자리가 마치 정치인들끼리 협의하고 조정할 수 있는 '몫'처럼 비쳐 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공직은 정치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주인은 국민이며, 정치인은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만약 정치인들이 특정 직책을 자신들의 사적 관계나 이해관계에 따라 배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이다.

그들만의 세계관, 선민의식
선민의식(選民意識)이란 자신들이 특별한 사명이나 우월한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 대중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사회를 이끌 권리가 있다고 믿는 태도를 말한다. 원래 종교적 개념에서 출발한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특정 집단이 자신들을 사회적·도덕적 엘리트로 여기며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오만한 태도를 비판할 때 사용된다.
정치권에서 이러한 선민의식은 매우 위험하다.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지, 국민의 머리 위에서 통치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선민의식이 강해질수록 정치인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국민을 계도하려 든다.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비판은 '무지한 대중의 오해'로 취급되고, 반대 의견은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매도된다. 결국 정치는 설득이 아니라 훈계가 되고, 소통은 일방적인 지시로 변질된다.
운동권 정치의 공과 그림자
1980년대 민주화운동 세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분명한 공헌을 했다. 군사정권 시절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청춘을 바치고 희생한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과거 민주화운동의 경험이 도덕적 우월감으로 이어져, '정치적 도덕성을 자신들이 독점했다'는 착각을 낳았다는 점이다.
"우리가 민주화를 이루었다." "우리가 역사의 옳은 편에 섰다."….
이러한 자부심은 때로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자신들만이 정의를 대변한다는 독선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 순간 정치인은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된다. 정당 내부의 공천 과정에서도 국민의 의사보다 계파와 인맥, 운동권 선후배 관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면, 유권자들은 정치가 자신들과 무관한 기득권, 기득권자들끼리의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변한 징후들이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권력다툼이 아니라 '근본적 개혁'을 할 때다
많은 사람이 촛불혁명을 단순히 특정 정권의 교체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촛불민심이 진정으로 요구한 것은 정권의 간판을 바꾸는 것을 넘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문화와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기득권 구조 자체를 청산하는 것이었다.
지금 정치권이 몰두해야 할 것은 차기 정권 창출을 위한 조기 권력다툼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내란의 실체를 철저히 파헤치고, 무소불위의 사법권력을 개혁하며, 왜곡된 여론을 양산하는 언론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나아가 일제강점기 이래로 대한민국 사회에 겹겹이 누적되어 온 해묵은 적폐들을 과감하게 뜯어고치는 것이야말로 국민이 부여한 준엄한 명령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과제는 뒤로한 채, 다시 여의도 중심의 폐쇄적인 정치문화와 밥그릇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 정치인들끼리 밀실에서 권력을 가늠하고 국민은 나중에 통보 받는 구조, 자신들이 국민보다 더 큰 역사적 정당성을 가졌다고 믿는 오만이 반복되는 한 개혁은 요원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촛불민심과 정치권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국민은 더 이상 정치 귀족을 원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유권자들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하고, 정치인의 말 뿐만 아니라 행동의 궤적까지 면밀히 평가한다. 국민은 과거 민주화의 공로를 인정하지만, 그것이 영구적인 면허증이나 특권이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정당성은 과거의 훈장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을 혁파해 내는 현재의 실천과 국민 앞에서의 겸손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국민은 자신들을 이끌 영웅이나 새로운 정치 귀족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적폐를 청산할 용기 있는 봉사자를 원한다. 정치인이 스스로를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주인처럼 생각하며 권력 배분에만 눈이 멀어 있는 순간, 민주주의는 기초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촛불이 남긴 가장 준엄한 교훈은 명확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를 망각하고 권력 싸움에만 몰두하며 국민 위에 서려는 정치인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