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보호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아이도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가.”
이혼한 부모가 반드시 한번은 자신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이다. 한 부부가 이혼했고 그들에게 다섯 살 아들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머니에게는 결혼생활 중 자살을 시도했던 과거가 있고, 이혼한 뒤에는 새로운 동거인과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면접교섭 과정에서 아이를 자신의 어머니, 즉 아이의 친할머니와 만나게 했다. 어머니는 과거 시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았고, 자신과 상의하지 않은 채 아이를 만나게 했다는 사실을 문제 삼아 법원에 면접교섭과 관련된 비송절차를 신청했다.
이 상황만 놓고 “어머니가 이상하다”, “과거 자살을 시도했으니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심리분석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한 낙인이다. 자살 시도의 원인과 당시 상황, 치료 여부, 현재의 정신건강 상태를 알지 못한 채 과거의 한 사건으로 현재의 성격이나 양육능력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거 역시 마찬가지다. 이혼한 사람이 새로운 사람과 함께 산다는 사실 자체가 전 배우자의 가족과 아이의 관계를 허용해야 한다거나 차단할 자격이 없다는 논리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어머니가 왜 아이와 친할머니의 만남을 강하게 문제 삼았는지, 그 반응의 중심에 실제 아이의 위험이 있었는지 아니면 과거의 갈등과 불신이 있었는지를 구별하는 일이다.
이혼했다고 아이의 가족관계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부부의 이혼에는 매우 중요한 심리적 함정이 있다. 법적으로 부부관계는 종료되지만 아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족관계는 그렇게 간단하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편은 더 이상 남편이 아니지만 아이에게는 여전히 아버지다. 시어머니 역시 여성에게는 더 이상 시어머니가 아닐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여전히 친할머니다.
바로 여기에서 이혼한 부모와 아이가 경험하는 세계가 갈라진다. 어머니에게 전 시어머니는 결혼생활에서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일 수 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고 생각만 해도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는 대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할머니를 경험하는 방식까지 반드시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반대로 할머니가 아이에게 실제로 위해를 가했거나 부모를 험담하고 아이를 갈등에 끌어들이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행동을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때 부모가 접촉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양육상의 문제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어머니가 시어머니를 싫어하는가”가 아니다. “친할머니와의 접촉이 다섯 살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이다.
현재 민법 제837조의2는 비양육 부모와 자녀가 서로 면접교섭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가정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이를 제한·배제·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친조부모에게도 일정한 경우 별도의 면접교섭 청구 가능성을 인정하지만 법률상 요건이 따로 존재한다. 따라서 “아버지의 면접교섭 시간에 할머니를 만났다”는 문제와 “할머니가 독자적인 면접교섭권을 행사했다”는 문제 역시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 역시 면접교섭의 핵심 목적을 자녀의 정서적 안정과 원만한 인격발달, 궁극적으로는 자녀의 복리 실현에 두고 있다. 막연한 우려만으로 면접교섭 자체를 배제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다. 결국 법원이 바라보는 방향과 심리학적으로 살펴봐야 할 방향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어른의 감정보다 아이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양육 판단에 개입할 때
그렇다면 이 사례에서 어머니의 심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가능한 첫 번째 설명은 ‘과거 갈등의 현재화’다. 사람은 과거 자신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었던 사람을 다시 마주할 가능성이 생기면 현재의 사건을 과거의 감정과 연결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이혼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분노와 억울함, 배신감이나 불신이 남아 있다면 아이와 전 시어머니의 만남도 단순한 조손 간 만남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사람을 왜 내 아이에게 만나게 하지?” 이런 생각에는 서로 다른 두 문제가 섞일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실제로 아이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아이가 접근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개인적인 감정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통제감 회복’이다.
갈등이 심했던 이혼에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늘어난다. 전 배우자가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에서 생활하는지, 면접교섭 시간에 아이와 무엇을 하는지를 모두 관리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불안이 높은 사람은 상대방 행동을 세세하게 확인하고 사전에 승인받도록 요구함으로써 안정감을 얻으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의 심리적 가능성일 뿐이다. 실제 사건에서 “상의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해서 곧바로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성격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기존 합의나 법원의 결정에서 제3자 접촉에 관한 조건을 정했는지, 아이에게 위험요인이 있었는지 등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세 번째는 ‘경계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다. 어머니는 “내 아이가 누구를 만나는지는 나와 협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아버지는 “내 면접교섭 시간에 아이가 자기 할머니를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양쪽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갈등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한쪽은 그것을 ‘양육에 대한 정당한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쪽은 ‘면접교섭에 대한 지나친 간섭’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통제와 보호는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이 사례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어머니가 누구를 싫어하는지가 아니라 아이에게 어떤 구체적인 위험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할머니가 아이 앞에서 어머니를 지속적으로 비난했다거나 아이에게 부모의 이혼 책임을 이야기했다거나 아이를 이용해 부모 사이의 정보를 전달하도록 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반면 아이가 할머니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만남에서 특별한 위험이나 심각한 정서적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부모의 과거 갈등만으로 아이의 관계까지 단절하는 것이 최선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도 면접교섭을 판단하면서 자녀의 나이와 건강상태, 자녀의 의사,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대관계, 면접교섭의 목적, 현재 양육환경에 미치는 영향, 아동학대 등의 전력과 장·단기적인 영향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다섯 살 아이는 부모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성인의 언어로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에게 “할머니는 엄마에게 나쁜 사람이었어”라고 설명한다고 해서 아이가 그 관계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이는 “내가 할머니를 좋아하면 엄마를 배신하는 것인가”라는 충성심 갈등에 놓일 수 있다.
이것이 고갈등 이혼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부모에게 필요한 능력은 전 배우자와 그 가족을 좋아하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아이의 관계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어머니가 새로운 동거인과 생활한다는 사실도 같은 기준에서 바라봐야 한다. “나는 동거남과 사는데 왜 아이는 친할머니를 만나면 안 되느냐”라는 식의 도덕적 비교는 문제의 핵심을 흐릴 수 있다.
동거인이 아이에게 안전하고 안정적인 사람인지가 중요하듯 친할머니 역시 아이에게 안전하고 안정적인 관계인지가 중요하다. 두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은 성인의 호불호가 아니라 아이에게 미치는 실제 영향이어야 한다. 결국 핵심은 일관성이다. 내가 선택한 관계에는 관대하면서 상대방이 선택한 관계에는 이유 없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그 판단에는 감정이 개입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상대방 가족과의 만남에서 실제 위험이 확인된다면 “가족이니까 괜찮다”는 이유만으로 접촉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보호와 통제는 겉모습이 비슷하다. 둘 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호는 아이에게 발생하는 구체적인 위험을 줄이려는 행동이고, 통제는 때때로 자신의 불안이나 분노를 줄이기 위해 타인의 행동범위를 제한하려는 형태로 나타난다. 둘을 가르는 가장 좋은 질문은 이것이다. “이 제한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은 아이인가, 아니면 나인가.”
면접교섭의 중심에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있어야 한다
이 사례에서 결혼생활 중 어머니에게 자살 시도 경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그 사실만으로 현재의 판단능력이나 양육능력, 성격장애, 정서불안 등을 추론해서는 안 된다. 자살 시도는 당시 개인이 극심한 고통과 위기에 놓여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지만, 과거의 사건 하나가 현재의 정신건강 상태를 자동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제 심리평가가 필요하다면 과거의 자살 시도 자체보다 현재의 정신상태, 치료와 회복 과정, 충동조절, 스트레스 대처방식, 부모와 아이의 애착관계, 양육행동, 전 배우자와의 갈등이 아이에게 전이되는 정도 등을 전문가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같은 원칙은 아버지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아버지가 “내 면접교섭 시간이니까 누구를 만나든 내 자유다”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아이 중심의 태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일부러 만남을 주선해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아이를 갈등의 전달자로 이용한다면 역시 문제다.
그래서 이 사례를 “누가 더 이상한가”의 경쟁으로 바라보면 답을 찾기 어렵다. 더 중요한 질문은 네 가지다. 아이에게 실제 위험이 있었는가. 아이는 친할머니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부모가 자신의 과거 감정을 아이의 인간관계에 투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부모의 선택이 아이의 안정적인 성장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주는가.
가정법원 면접교섭센터 역시 부모의 갈등이 심해 면접교섭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 중립적인 장소에서 면접과 자녀 인도를 지원하고 부모·자녀 관계를 돕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부모가 서로를 신뢰하기 어렵다면 모든 문제를 “허락했느냐, 허락하지 않았느냐”의 싸움으로 만들기보다 면접교섭의 장소, 시간, 인계 방법, 조부모 등 가족과의 접촉 방식과 아이 앞에서 금지할 행동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정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이혼은 부부관계를 끝낸다. 그러나 부모가 된 사실까지 끝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어른에게 ‘전 시어머니’인 사람이 아이에게는 ‘할머니’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아이에게 할머니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만남이 자동으로 아이에게 좋은 것도 아니다. 결국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상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상처와 아이의 이해관계를 분리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와 “내 아이도 그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된다”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면접교섭은 전 배우자에게 주어지는 특혜도, 상대방을 벌주는 수단도 아닌 아이의 삶을 위한 제도로 돌아올 수 있다.











